예는 흔히 요즘 교과서에서 동예라고 부르는 나라인데, 『삼국지』 의 기록을 보면 동예 사람들은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면서 제사 지낸다는 풍속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사에서는 보통 동 예를 두고 지금의 강원도 영동 지방을중심으로 동해안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 보니, 이런 이야기는 고대 한국인들의 사상을 나 타내는 풍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삼국지』에서는 예 라는 나라의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고조선의 역사가 잠깐 설명 돼 있다. 이런 구성을 보면, 호랑이를 신성시하는 풍습은 고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져 먼 옛날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능력치가 뛰어난 천재 셰프는 아니더라도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쌓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 가면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볼 수 있습니다. ‘부군당(府君堂)’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 놓은 제당을 말합니다.
8~9세기 무렵 자기 생산에 성공한 후,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과 교역하며 아시아의 신비를 알렸다. 이런 기술이 한반도로 전해진 것은 10세기 무렵. 우리 선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 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자체기술로 제작한 고려청자가 다양한 경로로 세계 각국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는 ‘코리아’란 이름도 얻었다. 주요 역사적 사건, 문화 등을 다룬 다양한 한국사 영상들을 통해오늘날의 우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식디미방』에 있는 음식들은 대개 17세기 안동 지역 앙반가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들이었기에 당시 경상도 지방의 사회상과 경제, 주요 산물과 향토 별미 등을 두루 알 수 있다. 이외에 17세기인 1611년 허균(許筠, 1569~1618)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요즘으로 말하면 각 지방 맛 탐방 서적이나 지역 맛집 소개 방송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책 제목은 ‘도살장 대문을 보면서 입맛을 다신다’라는 뜻인데, 허균이 유배생활 중 맛없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잘나가던 시절 팔도를 돌아다니며 맛보았던 산해진미를 떠올리며 마음 가는 대로 쓴 책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역의 향토 명물과 별미 음식에 관한 진정한 ‘먹방’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 소문에 장산범이라는 근사한이름이 붙고, 이후 장산범이 TV 에 보도되고, 장산범을 소재로 한 만화, 소설 등이 만들어지면 서,장산범의 습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
“벽(癖)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다. 대개 벽이라는 글자는 ‘병 질(疾)’자와 ‘치우칠 벽(辟)'자를 따라 만들어졌다. 병 가운데 무엇인가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터득하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적인 기예를 습득하는 일은 오직 벽이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벽(癖)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생각하면 좋고, 책방에 가서도 자꾸만 그 코너로 발길이 간다.
제 1장 태조실록 편에서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도읍지 한양, 위화도 회군, 태조 이성계의 가족에 얽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학교 역사시간에 드문 드문 들어보았던 사건들이 자세한 이야기로 실려 있어서, 역사에 대한 사고를 확장하는 느낌이 들어 유익한 것 같다. 태조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인 순종까지 조선시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시대별로 주요한 인물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마치 위인전기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1위를 놓지 않고 있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인터넷 강의 스타 강사로 유명한 설민석이 쓴 책이다. 역사를 지루하고 딱딱하다고 생각해 멀리하는 독자들을 위해 몇 년의 준비를 거쳐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쉽고 재미있게 압축해 놓았다.책은 27명의 조선시대 왕들을 불러 모아 핵심적인 주요 사건을 들려준다.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혹하게 글을 구성하는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스토리텔링과 실제 실록의 내용을 나란히 배치해 독자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사실이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했다.
조갑동의 시를 모은 시집 제목은『조동자유고』예요. 조갑동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어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쿠폰/포인트 사용에 따른 상품의 최종 결제 가격은 주문서에서 정확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일 처음 지어진 경복궁(景福宮)은 백악산(지금의 북악산) 아래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한 법궁(法宮)으로, 태조는 이곳에서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398년 정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가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5년(태종 5)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조선시대에도 기괴한 출생이 여러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요즘 말로 ‘샴쌍둥이’가 태어난 것인데요, 샴쌍둥이는 일란성 쌍태아의 특이한 형태로, 수정란이 둘로 나눠지는 것이 불완전해 쌍둥이의 몸 일부가 붙은 상태로 나온 형태를 말합니다. 실록의 묘사에 의하면, 난데없는 종소리에 길거리의 한양 사람들이 모두 해괴하게 여기며 놀라게 되었고, 즉각 군사를 풀어 종을 울린 자를 체포하게 했다고 한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경운궁을 사용하였다. 이때 석조전, 정관헌, 돈덕전, 중명전 등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대한제국의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어 조선과 대한제국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었다. 경운궁은 1907년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덕수궁(德壽宮)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고 외국 문화가 도입되면서, 호랑이 신령과 비슷한 다양한 토속 신령에 대한 숭배 풍조는 조금씩 쇠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호랑이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 무서 운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흔한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호랑이를 실제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처럼 과장한 이야기쯤은 제법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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